시카고 연은 굴스비 총재가 AI 열풍이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발언, 시장 반응과 한국 증시 영향까지 정리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내부에서 AI 열풍을 향한 경계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오스턴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AI 기대감이 커질수록 금리는 오히려 더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면서, 시장이 그동안 당연시해온 ‘AI 붐 = 금리 인하’ 공식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밀컨 인스티튜트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나온 이 발언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케빈 워시의 비둘기적 시각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구도를 만들었다. 글로벌 자금 흐름과 기술주 밸류에이션을 좌우할 사안인 만큼, 월가는 물론 코스피·코스닥 시장도 발언의 무게를 곱씹는 분위기다.
굴스비 총재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AI가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전에 기업과 가계가 “미래의 부”를 미리 끌어다 쓰면 경제가 과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대만 앞선 활동에 주의해야 한다”며 “버블이 클수록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같은 시각은 1990년대 닷컴 버블 시기와 자주 비교된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금리 인상을 자제했지만, 1990년대 말로 갈수록 결국 금리를 끌어올려야 했다. 굴스비 총재는 “지금이 1995년인지, 1999년인지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1995년이라면 디스인플레이션 기조 속에 금리 인하 여지가 있지만, 1999년이라면 과열 차단을 위한 인상 카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패널에 앉았던 캐시 우드 아크 인베스트 최고경영자(CEO)와의 시각차였다. 우드 CEO는 AI가 미국 실질 GDP를 최대 8%까지 끌어올리고 “거대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굴스비 총재는 “지금 보이는 개선이 정말 지속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추세 연장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데이터센터 투자 폭증을 두고도 “수확체감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짚었다.
시장 입장에서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은 따로 있다. 차기 연준 의장으로 유력한 케빈 워시는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그 결과 금리를 내릴 여지를 만든다”는 입장에 가깝다. 결국 굴스비의 발언은 워시 체제에서 벌어질 정책 논쟁의 예고편 격이다. 연준 내부의 균열 가능성은 곧 금리 경로의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이는 글로벌 위험자산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굴스비 총재는 인플레이션 자체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물가가 2% 목표로 좀처럼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은 안정적이지만 현재 더 큰 문제는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이라고 지적했다. 관세 충격 후유증과 에너지 가격 변수까지 겹쳐 있는 상황에서, AI발 수요 과열까지 더해질 경우 미국 경제가 다시 한 번 “스태그플레이션 그림자”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월가의 해석은 엇갈린다. 일부 전략가들은 “AI 관련 설비투자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되기까지의 시차가 큰 만큼, 단기적으로는 굴스비 총재의 경고가 맞을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생산성 혁명이 이미 기업 마진에 반영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금리 인상은 과잉 대응”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핵심 변수는 결국 ‘기대’와 ‘실제 데이터’의 간극이 얼마나 빨리 메워지느냐다.
한국 시장 관점에서도 시사점이 작지 않다. 엔비디아 공급망에 묶여 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데이터센터 수혜로 분류되는 전력기기·HBM·반도체 장비주들은 미국 금리 경로 변화에 가장 민감한 종목군이다. 만약 연준 내 매파 목소리가 강해지고 ‘AI 과열 차단용 금리 인상’ 시나리오가 부각되면, 그동안 AI 테마로 가파르게 오른 종목들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원·달러 환율도 변수다. 연준이 인하 속도를 늦추거나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흐름이 강해질 경우 달러 강세 압력이 커진다. 이는 외국인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국내 증시의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점검해야 할 포인트는 분명해지고 있다. 단순히 “AI는 무조건 호재”라는 단일 서사에 기대기보다는, 실제 생산성 데이터와 기업 실적, 그리고 연준 인사들의 발언 톤 변화를 함께 추적해야 한다. 특히 5월 이후 발표될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개인소비지출(PCE), 그리고 다음 FOMC 회의에서의 점도표가 굴스비식 경계론이 다수 의견으로 자리 잡을지 가르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AI 시대의 통화정책은 기존 교과서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에 들어서고 있다. 굴스비 총재의 경고는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하이프가 클수록, 청구서도 더 일찍 날아온다.” 시장이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올여름 글로벌 자산시장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